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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찝찝한, 그러나 해야 하는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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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찝찝한, 그러나 해야 하는 Awkward but mandatory ()

 Written by Kaelly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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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송기 패드 위에 환한 빛에 휩싸인 인영 둘이 나타났다. 한 명은 한쪽 무릎을 꿇고 생각보다 안전한 자세로 착지해 충격을 줄인 반면, 한 명은 그대로 상체부터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두말할 것도 없이 후자가 제임스 커크였다.


정신을 차린 커크는 벌떡 일어나 해리슨을 노려보았다. 해리슨은 몸을 일으키고 그를 말없이 지나쳤다. 날아가는 새 두 마리를 돌멩이 하나로 맞춘, (예시일 뿐이다) 말 그대로 기적처럼 두 사람을 구해낸 기술부에 대한 치하의 말도 없었다. 크루들도 수고하셨다거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따위의 말을 입에만 담은 채 (하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하는 표정이었다) 컨트롤 패널에서 서성였다. 이를 가만히 보고 있을 커크가 아니었다.


커크는 눈을 날카롭게 치켜뜨고 해리슨의 앞을 막아섰다. 새파란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었다. 꽉 다물린 입술과 험악한 눈썹에서 사나운 감정이 느껴졌지만, 해리슨은 그의 뾰족한 눈빛을 그저 무덤덤하게 받아냈다.


"비키도록."

"닥치고 내 말 똑똑이 들어. 잘나신 증강인간님아." 커크가 이를 갈며 뱉어냈다. "네놈은 이 빌어먹게 큰 함선의 함장이야. 이 함선의 크루들은 겨울잠을 자고 있는 짐승들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사람들이고. 그리고 그 한 명 한 명은 네가 책임지고 지켜야 할 사람들이야!"

"아직 임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군." 해리슨이 차갑게 답했다.

"아니!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 커크가 그의 말을 끊었다.


해리슨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그가 입을 다물고 지그시 바라보자 커크도 조용히 그 시선을 받았다. 갑자기 침묵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해리슨과 커크가 입을 열지 않자 크루들은 더욱 못견디겠다는 표정으로 발만 동동 굴렀다. 사실 함장과 부함장의 대립은 엔터프라이즈에 있던 크루들에겐 하루 세 번 식사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싸우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두 남자의 대립은 달랐다. 분위기부터 천양지차였다.


한 명은 극악무도한 전지구적 범죄자였고, 어딘지 핀트가 나간 싸이코패스였으며, 심지어 인간보다 월등한 신체 능력을 가진 증강인간이었다. 길고 긴 동면 끝에 깨어난, 실제 나이 이백여 세의 19세기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잘못 건드리면 깨질 것 같은 여리디 여린 한 명은 평범한 인간이었다. 서른둘의 젊은 나이에 대령 직급에 오른 특이 케이스이기도 했다. 그는 무모하지만 때론 용감하고 가볍지만 때론 진중한, 책임감있는 전(前) 함장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둘의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받을 빚이 있다는 것이었다.


"임무를 제대로 안다면, 왜 내게 불필요한 요구를 하는지 모르겠군. 커크."


해리슨은 어떤 일이 있어도 커크를 이름으로 부르거나, 부함장이라는 직함으로도 부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커크라는 성을 언급했다. 커크 또한 해리슨을 늘 성으로 불렀다. 함장이라는 단어는 혀끝에도 올린 적이 없었다. 두 사람간의 해묵은 감정은 출항한 이후로부터 늘 그래왔듯 어긋나고, 부딪치고, 마침내는 이가 나간 접시처럼 날카로운 단면을 드러냈다.


"우린 한 배를 탔어. 네가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이 크루들은 모두 네 명령을 따라. 5년의 탐사 임무 동안- 아주 운좋게 네가 죽어 나자빠지든지 탈영을 하든지 우주 공간으로 튀어나가든지 해서 기간이 줄어들지 않는 이상은 크루 모두가 네 책임이라고. 알아들어?"


5년간의 2차 외우주 탐사. 그것이 모두가 알고있는 공식적인 임무였다. 하지만 실질적인 임무는 해리슨과 그의 크루들을 외딴 별에 유배하는 것이었고, 그 내용은 커크와 해리슨만이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의 임무는 1기간과 2기간으로 나누어지며 1기간의 책임자는 해리슨, 2기간의 책임자는 커크였다. 실제 임무를 철저히 비공식으로 처리한 것은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크루들이 최선을 다해 탐사 임무에 임하도록 하고, 해리슨이 크루들을 제대로 인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하지만 해리슨의 행동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네놈이 이 크루들 중 한 명이라도 죽게 내버려 둔다면-." 커크가 운을 뗐다.

"그럼," 해리슨이 한 발 다가섰다. 서로의 숨결이 코끝을 스쳤다. "그럼 날 죽이기라도 할 건가?"


커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긍정의 말도 부정의 말도 없었지만, 대개 침묵은 긍정이다. 해리슨이 조소했다.


"그럼 지금 죽여. 할 수 있는 걸 알텐데. 제어장치를 작동시켜."

"뭐...?" 커크가 눈을 크게 떴다. "뭐? 제어장치?"

"아- 전혀 몰랐다는 표정이군. 친절하게 일러주지." 해리슨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스타플릿이 내 몸속에 제어장치를 심었다. 언제든지 나를 죽일 수 있는 장치를. 그 장치에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자, 제어권을 가진 자의 생명 신호가 끊겨도 나는 죽어. 일종의 안전 시스템이지. 그리고 그 제어권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 너다. 커크."


파란 눈동자에 파도가 일었다. 컨트롤 패널 뒤쪽에 서있던 크루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사실이든 아니든, 크루들에게 말이 퍼지면 앞으로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게 분명했다. 임무에 차질이 생기는 건 (심지어 좋아하지도 않는 임무에) 절대 커크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커크는 해리슨의 말을 막았다.


"잠깐. 난 전혀 듣지 못했어. 그리고 그런 건 이런데서 말하지-."

"파일을 제대로 보지도 않았겠지."


커크가 입술을 아무렇게나 짓씹었다.


"닥치고 다른데서 얘기하자고."

"왜지? 무엇이 두렵나? 날 죽일지도 모른다는 게? 우습군. 그게 네가 가장 원하던 일이지 않나."

"내가 분명 닥치라고...."

"오- 날 죽이고 네가 캡틴이 되는 시나리오인가? 그래. 5년간 신나게 뛰놀던 그 함장석으로 돌아가서, 네 마음대로 명령을 내리고 네 마음대로 탐사를 해. 날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제어장치를 작동하는 방법은-." 


퍽, 그 순간 둔탁한 충격음이 퍼졌다.

해리슨은 옆으로 돌아간 고개를 바로했다. 주먹을 날린 커크가 씨근거리며 양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손등 위에 파르라니 돋아난 힘줄이 미세하게 떨려 보였다. 해리슨은 표정없는 새하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파보이기는커녕 한 대 맞은 것 같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도리어 커크가 맞은 것처럼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지 않을 거라면." 해리슨이 운을 뗐다.

"......."


커크가 침묵하는 사이 해리슨은 발걸음을 옮겨 그를 지나쳤다. 커크는 옆을 돌아보지 않았다. 무정하고 단단한, 또렷한 단어들이 귓등을 때렸다.


"내 방식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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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6. 12:57
카레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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