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Colorful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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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함장 제임스 T. 커크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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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함장 제임스 T. 커크 Captain James T. Kirk (下)

 Written by Kaelly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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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커크는 빛나는 사람이었다. 우주의 별들 사이에서나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그는 늘 반짝였고 그 빛을 잃은 적이 없었다. 으레 사랑받는 사람이 그러하듯 커크는 그 사실을 알았다. 심지어 그것을즐기곤 했다. 즉 커크는 때론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칸의 사건 이후 오만함 대신 겸손함을 배운 커크는 5년 임무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돌아와서도 지구 방방곡곡을 비롯해 알파 쿼드란트 전체가 주목하는 엔터프라이즈의 탐사 보고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도, 성실하게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였다.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행동이었다. 스팍과 맥코이를 비롯한 엔터프라이즈의 크루들은 이에 속으로 감탄과 박수, 경의를 보냈다.


결국 조나단 아처 장군이 단상 위로 올라와 청중과 늘어선 카메라들에게 양해를 구하고서야 커크는 질문 세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손을 흔들던 커크는 서늘한 건물 복도로 들어와서야 옅은 한숨을 쉬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되지?" 아처 장군이 농을 던졌다.

"말도 마세요. 아직도 멀미가 납니다." 


커크가 농담으로 받아치며 웃어보였다. 아처 장군은 자신의 사무실로 그를 안내했고, 커크는 눈을 비비며 그를 따랐다. 자신에 대한 칭찬이라든가는 이미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상태였다. 커크는 정말 피곤했고, 빨리 어디에든 들어가서 자고 싶었다. 귀환한 엔터프라이즈 크루들 800여명은 이미 다음 임무로 소집되기 전까지 장기 휴가를 받은 터였다. 다들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갔겠지. 커크는 괜시리 울적해졌다.


돌아갈 곳이 없는 건 커크와 맥코이 정도였다. 스팍은 뉴벌컨에 들를 계획이라며 커크에게 언질을 한 참이었다. 그리고 맥코이는 아마 장교 숙사를 임시로 배정받을 거라고, 필요하다면 자기 것까지 해줄 테니 걱정 말라고 어깨를 툭툭 치고 갔더랬다. 커크는 다시 한 번 길게 하품을 뱉었다. 


"-미안하지만, 휴가 뒤에 바로 다음 임무가 있을 예정이네. 5년 임무 이후의 2차 탐사 프로젝트인데, 자네만한 인재가 없다 하더군."


들려오는 문장들을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쯤으로 치부하던 커크가 뒤늦게 그의 말을 듣고 눈을 크게 떴다. 뭐? 다음 임무? 2차 탐사요? 아처 장군은 커크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무언가를 건네 주었다. 잠깐 입을 벌렸던 커크는 가까스로 진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었다. PCM이라고 크게 쓰여 있는 서류봉투였다. 그것에 정신이 팔려있던 커크는 사무실로 들어가서도 미처 소파에 앉은 한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번에 Project Colorful Mind - 2차 탐사 프로젝트를 함께할 존 해리슨 대령이네. 대령, 이쪽은 5년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제임스 T. 커크 대령일세."


귀로 들어온 아처 장군의 말을 듣고서야 커크는 믿을 수 없는, 그리고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과 귀가 잘못된 것이기를 바랐다. 청천벽력과 같은 그 '이름'의 언급에 커크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소파에 곧은 자세로 앉아있던 존 해리슨 대령이 일어나 자신을 똑바로 쏘아보고 있었지만 커크는 그를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볼 수 없는 것인지 보지 않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커크는 존 해리슨, 아니, 칸 누니엔 싱, 수많은 사람을 죽였으며 자신을 위협하고 엔터프라이즈를 침몰시키려 한 범죄자를 상대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몰랐다.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 없는 그런 것.


"저 자는 존 해리슨이 아닙니다. 칸 누니엔 싱이라구요. 저 자가 무슨 짓을 했는지 그새 잊으셨습니까? 켈빈 기록보관소를 테러하고, 데이스트롬을 습격하고, 파이크를- 장교들을 죽였습니다. 저를 속이고 엔터프라이즈를 이 스타플릿 HQ에 꼴아박으려 했던 놈이라구요! 제 손으로 지하에 처넣었는데 어째서, 어째서 여기에 멀쩡히 있는 겁니까?"


커크가 격앙되어 거친 소리를 내뱉었다. 존 해리슨은 자못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커크를 노려보고 있었다. 조나단 아처 장군은 짧은 침음성을 뱉었다.


"왜 이러나. 공문도 보냈잖은가. 스타플릿은 더 이상 자네가 말한 것들에 대해 그에게 묻지 않기로 결정했어. 그러니 서로간의 사적인 감정 같은 건 나가서 둘이 해결하게."

"이 프로젝트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커크는 이를 갈며 대답했다. 서류 봉투를 꽉 쥔 손이 떨리고 있었다. 여전히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태도에, 해리슨은 입을 다물고 그를 주시했다. 커크는 여전히 그에게 일말의 시선도 던지지 않았다.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볼까. 캡틴.


해리슨은 커크의 이런 점을 즐겼다. 하지만 결국 그는 지게 되어 있다. 그게 그의 운명이나 마찬가지였다. 커크는 그를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 


"자네에게 언제 선택권을 주었던가?"


아처 장군의 말에 커크가 그대로 입술을 깨물었다. 스타플릿의 평화를 지향한다고는 하나 애초에 군부였다. 군대에서 항명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를 처음 본 것처럼 행동하는 걸 보니 공문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나 보군. 자네 부관이 스팍 아닌가? 그를 경질하도록 하지."

"아-."


아처 장군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커크의 얼굴색이 변했다. 그가 순간 뻣뻣하게 굳는 것을, 해리슨은 분명히 보았다. 


"아닙니다. 장군님. 제 불찰입니다. 그가 올린 보고서를 제가 읽지 않은 것이니 저를 경질하시죠."


그리고 저를 이 프로젝트에서 빼내주시죠. 지금. 당장. 속마음을 삼키는 커크였다. 아처 장군은 잠깐 커크를 돌아보고 그냥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손짓으로 나가라는 표시를 했다.


"됐으니까 나가보게. 둘다. 임무 내용은 그 안에 다 들어있으니까 모르면 해리슨 대령에게 물어보고."


해리슨과 커크는 동시에 쫓겨났다. 사무실 문이 자동으로 닫히는 소리가 등 뒤로 들렸고 그제야 해리슨이 입을 열었다.


"하나만 말해두지. 나는 의사결정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닥쳐. 그냥 제발, 닥쳐."


서로를 마주 보지 않고 그저 벽만 바라보며 나란히 선 채, 커크가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스팍이 망설이던 게 두 달여가 지난 지금에 와서야 이해가 갔다. 아마 이것이었겠지. 그래도 그때 말했다면 지금 이렇게 엿같은 기분은 맛보지 않았을텐데. 커크는 속으로 온갖 욕설을 내뱉었다. 해리슨을 마주 보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마주 볼 수 없어서인지도 몰랐다. 다시금 그에게 속을지도 모른다는 본능적인 거부감과 두려움. 혹은 자신의 죽음의 원인이자 부활의 원인이기도 한 그에 대한 껄쩍지근한 그런 관계성.


새로운 탐사를, 그것도 칸과 가야 하다니. (커크는 여전히 그를 존 해리슨이라 부르는 것이 영 거슬렸다) 임무 내용을 확인하는 게 먼저다. 커크는 인사도 없이 그대로 몸을 돌렸다. 한시라도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싶었다. 


"커크."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캡틴'도 아니고 '성'을 불렀다. 커크는 이제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대답해야 하나? 무시해야 하나? 멈춰서야 하나? 칸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은 증오라기보단 배신감에 가까웠다. 그것도 막연한. 커크는 간신히 멈춰서서 짧게 답했다. 


"왜."

"임무 브리핑 리허설은 익일 14시다. 내일까지 컨퍼런스 C-3으로 나오도록."


일방적인 명령. 이에 커크가 가시돋친 말투로 비아냥거렸다. 


"네가 뭔데 나한테 명령을 해? 존. 해리슨. 대령. 모르나본데 나도 대령이거든."


해리슨은 서류를 툭툭 치며 자신도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커크가 뒤를 돌아보았다. 멀어져가는 해리슨의 등을 커크는 똑바로, 그 푸른 눈빛으로 살벌하게 쏘아보았다. 


"내가 네 캡틴이니까. 내일 늦지 말도록."

"뭐...?!"


지구에 도착해서 세 번째로 깊은 충격과 분노를 느끼며, 커크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급히 봉투를 열어 서류를 살폈다. 그의 말대로, 임무의 책임자는 존 해리슨이었다. 자신은 그의 부관이자 감시역이었다. 커크가 서류를 그대로 구겨버렸다. 이 빌어먹을 우주는 한 번도 자기 편인 적이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커크는 이제 분노를 넘어서서 울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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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5. 9. 23:18
카레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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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렉 칸커크 릴레이 'Project Colorful Mind' | Star trek : Into Darkness 기반 | 집필자 : 카레우유, Gesilliya | 아이디어 출처 : pic.twitter.com/CJ5lStal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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